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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문화유산 답사기]방산자기(方山磁器)의 화려한 날들
  • 등록일2007-06-28
  • 작성자북부청 / 홍현정
  • 조회5856
  양구군 방산(方山)의 지명은 아름다운 산이 병풍처럼 사방(四方)으로 둘러 쌓여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 지역은 백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질 좋은 백토가 많이 매장되어 있어 조선시대 궁중에서 임금이 사용하는 어용자기(御用磁器)를 굽기 위해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사옹원분원에 자기원료인 방산백토를 연간 510석을 공납한 곳이기도 했다. 1석은 144kg이니 대략 따져보아도 8톤 덤프트럭 10대 분량이다.
  이처럼 방대한 량의 백토를 봄과 가을 두 차례씩 공납하여야 하는 방산지역은 질 좋은 백토를 채취하는 데 500여 가구 주민들이 동원되었는데,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채굴작업 시찰을 나온 감사를 살아있는 채로 구덩이에 밀어 넣고 묻어 버렸다는 금악리 논골의 “감사 구덩이 전설”이 지금까지 구전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방산 백토는 흰 떡가루처럼 품질이 뛰어나 전국 유명 백토산지에서 공납받는 물량의 68%를 차지하며 350여년간 조선의 조정에 공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질 좋은 원료 뿐만아니라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수입천과 풍부한 땔감은 고려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자체적인 요업발달을 가능케 한 배경과 원동력이 되었다.
  방산자기의 유명세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지난 1932년 10월 강원도청 공무원들이 금강산 월출봉에서 공사중 발견한 “태조 이성계 발원사구”이다. 이곳의 석함(石函) 속에서 백자향로와 백자 발(鉢) 4개가 출토 되었는데 이중 큰 백자 발 안팎에는 “방산사기장 심의”라고 기록되어 자기를 구워 만든 장소와 도공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태조 이성계 발원사구를 만든 곳이 양구 방산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자기 하면 경기도 이천이나 여주를 떠올리는데 양구 방산자기의 명성 또한 그에 못지 않았음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방산에는 예전의 부흥기를 입증하듯 여러곳의 가마터가 있으나 지금까지도 자기를 굽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어서 방산자기를 구워내던 지난날을 추억하며 외로이 엎드려 있는 가마터가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무엇이든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양구군은 총사업비 25억여원을 들여 도자기박물관을 건립하고 백자가마터를 복원하여 전통문화체험장을 조성하는 등 방산자기의 맥을 잇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산자기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 본다.  


<산림문화유산 리포터 정재림, 양구국유림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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