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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ㆍ계곡] 장성 필암리의 낙엽활엽수림
  • 등록일1999-01-25
  • 작성자 / 김**
  • 조회4425
소 재 지 :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번지
소 유 자 : 사유
숲 길 이 : 1,764평(서원)
우 점 종 : 상수리나무
수 고 : 17/10∼20m 팽나무
흉고직경 : 40/20∼70cm 졸참나무
임 령 : 50∼200년
수 관 폭 : 8∼13m
지 하 고 : 5∼7m
보호지정품격 : 서원주변 경관림
지 정 사 유 : 필암서원(사적 제242호) 주변 장성읍에서 북서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한 필암서원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높지 않은 구릉지의 산록으로서 서원 앞으로는 시원하게 농경지가 펼쳐지고 장성호에서 시작되는 황룡강의 지류인 문필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어귀 남향의 경사지로서 암석노출이 약간 있으나 토성은 사양토로서 토양습도가 적윤하고 유기물이 풍부하여 비옥한 상태이다.
사적지 주변에 위치하는 관계로 경관유지를 위하여 인위적인 간섭을 전혀 받지 않아 천연림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교목층으로는 상수리나무, 팽나무, 소나무를 비롯하여 졸참나무, 벚나무가 상층을 덮고 관목층으로 느티나무, 감태나무, 쥐똥나무, 찔레꽃, 조록싸리 등 30여종이 번무하며 꼭두서니, 닭의장풀, 원추리, 맥문동 등 초본류와 함께 높은 식피율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서원경내에는 은행나무 노거수를 비롯하여 능수버들 등이 고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남지방의 대표적 서원인 필암서원의 주변으로서 여기에서는 하서 김인후의 학문과 덕목을 기리며 선비정신의 맥을 잇고 있다. 김인후 선생은 성균관에 입학하여 퇴계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으며 문과에 급제하여 옥과현령이 되는 등 한때 벼슬길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낙향하여 성리학 연구와 후학을 키우며 평생을 정진하였는데 사미인곡을 쓴 정철도 그의 제자였다. 성균관 문묘에 모셔져 있는 이 나라 열여덟 현인으로서 호남인물은 오직 한 분 뿐이므로 지역주민들은 큰 긍지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 지방에는 [장성사람은 고춧가루 서말을 먹고도 재채기 한번 안한다]라는 속담과 같이 체통높은 선비들이 많았으며 특히 성과 경을 중히 여겨 세속에 욕심이 없어 [청산도 절로 절로녹層?절로 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라고 읊었던 김인후 선생의 선비정신을 기리는 필암서원 경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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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암서원 │
└─────┘ 김인후의 제자들이 1590년(선조 23년) 장성읍 기산리에 서원을 세우고 선생의 위폐를 모셔 받들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때 왜군의 방화로 서원이 불타버리자 황룡면 증산리에 복원하였으며 현종 3년에 [필암]이란 액호를 사액받았다. 그 후 건물의 입지조건이 좋지 않아 1672년(현종13년) 현소재지인 필암리로 옮겼으며 이 건물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때도 훼손되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인종의 어필묵죽도를 비롯하여 서책과 고문서 등이 보물 제587호로 지정, 보관되어 있으며 [곽연루]를 비롯한 총16동의 건물이 서원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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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ㆍ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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