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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문화유산 답사기]어릴적 기억속의 장절공 신숭겸 묘역을 다녀오다
  • 등록일2007-07-16
  • 작성자북부청 / 홍현정
  • 조회6309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 작성자 : 춘천국유림관리소 남수미 >


 초등학교 시절 자주 다녀 온 소풍 코스중의 하나인 신숭겸 묘역.
내 어린 시절 기억속의 신숭겸 묘역은 그저 매번가는 소풍코스로 의 상징적인 의미가 큰 곳이기도 하다.
 내 아련한 기억 속을 더듬어 다시 찾은 신숭겸 묘역은 우리나라 4대 명당지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서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명당임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신숭겸(?~고려 태조 10년, 서기 927년)은 평산 시씨의 시조로 초명은 삼능산이고 호는 장절 공이다. 광해주(춘천) 출신의 장군으로서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과 협의하여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927년에 신라를 도와 후백제 견휜 군과 싸우게 되었는데 고려 태조는 신숭겸과 김낙을 대장으로 정예병 5천명을 이끌고 후백제를 공격하게 되었다. 드디어 고려와 후백제군이 공산의 미리사 부근에서 부딪쳤다.
병이 열세했던 고구려군은 대패하였으며 태조와 장수들은 후백제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허사였다. 신숭겸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 태조만은 비슷해 갑옷을 바꿔 입고 태조를 탈출시킨 후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하여 집중 공격하여 집중 공격하였고, 힘을 다해 싸우다 신숭겸이 장렬히 전사하자 후백제군은 그의 목을 베어갔다. 그 후 태조 왕건은 신숭겸의 공을 기려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후하게 장례를 지냈고 금두상이 도굴될 것을 두려워하며 춘천, 구월산, 팔공산에 똑같은 묘를 만들게 하였다.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도 봉분이 세 개가 있는데, 어느 것이 공의 봉분인지 알 수가 없다.
이곳 신숭겸 묘역은 본래 고려 태조의 무덤으로 정해 놓았던 곳인데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에게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신숭겸 묘역을 다시 찾으면서 새삼 떠오르는 것은 누구나 처해진 상황 속에서 매 순간순간 최선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지만, 과연 누군가를 위해서 주저 없이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의 용기와 충심을 지닐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의 나는 어릴 적 내 기억속의 나만한 초등학생을 둔 학부형이 되엇다. 조만간 아이와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아 역사적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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